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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멜라니 클라인 이론의 주요 개념

멜라니 클라인 자신은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정신분석학을 잘 계승한 ‘프로이트의 실질적인 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연구가들은 대상관계 이론의 실질적인 개척자로 손꼽는다. 멜라니 클라인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40세) 정신분석학에 입문하였다. 페렌찌와 칼 아브라함 등 당시 정신분석학계의 주축을 이룬 분석가들에게 분석을 받았으며, 그녀가 베를린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특히 아브라함의 영향과 격려가 컸다. 나중에는 존스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이주하였고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그녀의 이론은 특히 안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자아심리학자들과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때문에 영국 정신분석학회는 분열된다. 오늘날에는 정신분석학 내에서 단일 학파로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학파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 정신분석

꼬마 한스의 사례에서처럼 프로이트가 어린이를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분석한 사례도 있었지만 아이를 직접 분석한 것은 멜라니 클라인이 처음이었다.
클라인은 놀이라는 수단을 분석 방법으로 활용했는데, 아이들의 놀이가 정신분석 방법인 자유연상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인들이 꿈이나 자유연상을 통해 무의식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적인 환상을 상징적으로 표현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상징적인 언어를 읽고 이해한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성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클라인에 따르면, 성인의 자유연상이 불안에 의해 억제되는 것처럼 아이의 놀이도 불안에 의해 방해받거나 억제된다. 그것은 놀이를 중지하거나 놀이가 경직되고 상상력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인의 저항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놀이에서 나타나는 억제를 해석해줌으로써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클라인은 성인을 분석할 때와 똑같은 입장에서 아이의 치료가 진행될 수 있다고 보았다. 놀이를 통해 무의식적 갈등을 끌어내고 아이가 보이는 불안에 대해 안심시키거나 지지하려고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해결해나간다. 치료자의 해석이 적중하는 것일 때 그것은 어린이에게 해방감을 가져다주며 경직되어 있던 놀이의 내용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렇게 클라인의 놀이치료는 놀이-해석-반응의 반복 과정이다.
클라인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1923년에는 어린이 분석 원리와 기술을 완전히 확립한다.

아이는 정해진 시간(한번에 50분, 주 5회)에 상담을 했다. 방은 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되었다. 아이들은 각각 자신의 장난감 상자를 가졌다. 장난감은 조심스럽게 선택되었다. 작은 집들과 두 가지 크기로 된 남자, 여자, 농장과 들짐승, 벽돌, 공, 작은 공깃돌, 가위, 실, 연필, 종이, 찰흙과 같은 놀잇감이 있었다. 아이의 자유로운 놀이는 성인 분석에서 자유연상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에 장난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장난감이 놀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성인 분석에서 분석가가 연상의 주제를 제시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장난감도 놀이의 주제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그 자체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난감이거나 병정 장난감처럼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 장난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 모습의 장난감은 아이와 어른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가지 크기로 되어 있지만 특징은 없다. 장난감은 그 크기가 매우 작다. 아마도 크기가 작다는 것은 내적 세계를 표현하는데 더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Segal, 1999)

클라인의 놀이 치료 사례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다음에 소개할 사례는 클라인의 [어린이 정신분석]에 실린 피터라는 네 살짜리 아이에 대한 분석 사례이다. 피터는 불안해하고 불평하며 억제되어 있는 아이였고 다른 아이들 특히 형제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때로는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아이였다.

첫 면담 초기에 피터는 장난감 마차와 자동차를 가져와서 그것들을 일렬로 놓았다가 다시 옆으로 나란히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이 사이에 피터는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가져와서 하나에 다른 하나를 충돌시켰는데, 그 결과 말의 발이 서로 부딪쳤다. 그리고 그는 내게 “프릿츠라고 하는 새 동생이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마차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좋지 않아요”라고 했고, 즉시 부딪치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그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장난감 말 두 마리를 같은 방식으로 서로 부딪쳤다. 나는 “자, 말들은 서로 부딪치는 두 사람이구나”라고 말했다. 처음에 아이는 “아니야, 그건 나빠요”라고 했지만 곧 “그래요, 그건 서로 부딪히는 두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는 “말도 서로 부딪혔어요. 그리고 이제는 자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서 벽돌로 그것들을 덮고는 말했다. “그것들은 다 죽었어요, 내가 묻었어요.”

클라인은 첫 면담에서 장난감들이 사람을 상징한다는 사실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다음 아빠와 어머니가 서로 부딪히면 동생이 태어난다는 아이의 생각에 대해 해석했다. 아이의 놀이는 발전해서 그 성관계에 참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줌을 싸고 똥을 싸는 좀더 직접적인 반응을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드러냈다. 앞서 첫 면담에서 “그들은 죽었어요”라고 표현한 것에서 부모와 형제가 죽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이 명확하게 드러났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안나 프로이트는 어린이 정신분석을 발전시켰다.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으며 둘 사이의 논쟁은 1927년 어린이 분석 심포지엄에서 절정에 달했다. 안나 프로이트는 아이는 아직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으며 삼중구조를 발달시키기 이전이므로 분석상황에서 전이를 발달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어린이 분석은 초자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분석적일 뿐 아니라 교육적이어야 하며, 어린이에 대한 가치 있는 연구는 긍정적 전이에서만 이루어지고 부정적인 전이는 가급적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반대로 클라인은 아이에게 있는 불안과 일반적인 의존성 때문에 아이는 오히려 분석가에게 빠르고 강하게 전이를 발달시킨다고 생각했다. 어린이가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전이의 발달을 가로막지 않는데, 분석가에게 전이되는 것은 실제 부모와의 관계가 아니라 내적 환상 속에 있는 부모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클라인은 정신분석 안에는 교육적 수단이 끼어들 자리가 없으며, 그것은 진정한 정신분석 과정을 진행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녀는 “진정한 정신분석 상황은 분석적 수단에 의해서만 조성된다”고 말했다. 만일 긍정적인 전이를 얻기 위해 교육적 수단과 같은 비분석적 수단을 사용한다면, 분석 상황은 자연스럽게 전개될 수 없다. 그녀는 분석가가 어떻게든 긍정적인 전이를 얻으려고 하면 아이는 자신의 분열된 적대감을 주변 사람에게로 옮기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의 다른 관계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본질적인 갈등인 박해하는 초자아에 대한 두려움은 분석되지 못할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의 중요한 방어기제로서 투사적 동일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투사가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충동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함으로 축출하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에서는 충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일부가 대상 안으로 투사된다. 이때 투사된 것이 자기의 일부분이므로 무의식적인 동일시를 통해서 추방된 부분과의 연결이 유지된다. 투사된 정신내용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주체는 그 내용과 관계를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나쁜 부분만이 아니라 좋게 느끼는 부분까지도 포함한다. 나쁜 부분들이 투사되면 그 대상은 두려운 박해자가 되고, 좋은 부분들이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의존이 생긴다. 이때 그 대상의 상실은 자신의 일부분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대상은 통제되어야만 한다. 동시에 그 대상은 자신의 가치 있는 모든 부분을 담고 있으므로 개인은 그 대상에게 전적으로 지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투사적 동일시는 초기에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기제이지만 그 자체로는 병리적인 것이며 이것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경우 정신병이나 심한 성격장애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생성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는 심각한 현실 지각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고 자아와 대상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정신병적 와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많은 이론가들은 클라인학파에서 투사적 동일시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론가들이 투사적 동일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클라인이 애초에 사용한 투사적 동일시 개념은 이런 것이었다. 유아는 자신의 공격성을 투사하여 무는 입이 달린 젖가슴이나 배설물들로 가득 찬 젖가슴에 대한 환상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젖가슴은 자신의 나쁜 부분과 전적으로 동일하게 여겨진다. 그러한 자신의 일부는 대상 속에 있으면서 대상을 통제하고 파괴한다. 이후 이론가들은 투사적 동일시를 대인관계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자신이 담아둘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마음 안으로 밀어 넣어 그것을 처리하거나 전달하려는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발달적 자리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중본능 이론(쾌락의 원리를 넘어서, 1920)에 토대를 두고 정신의 발달과정을 생명본능(Libido)과 죽음본능(Thanatos) 사이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며, 무의식 환상(Phantasy)의 형태로 정신 안에 나타난다. 이 무의식 환상은 양가감정 이전의 원시적인 정서의 영향 아래 있는 자기와 대상을 반영한다. 그녀는 공격 욕동이 초기의 내재화된 대상관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능적 욕동과 초기 대상관계가 결합된 변천을 두 개의 “자리”, 즉 “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라는 개념으로 묘사하였다.

클라인은 발달 단계(stage)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리(posi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리라는 개념은 단계와 달리 무시간적인 개념으로서 생애의 발달상의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이나 심지어 매순간마다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자리라는 용어는 대상과 관계를 맺는 관점 혹은 태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자아의 상태, 내적 대상관계의 본질, 불안의 본질과 방어의 특성들과 같은 자아의 구성 상태를 일컫는다.

편집-분열적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삶이 시작되면서 생명본능과 죽음본능 사이에 투쟁이 시작된다. 죽음본능은 자아가 해체되고 완전히 멸절될 것 같은 불안(annihilation anxiety)을 낳는데 이러한 불안을 초기의 약하고 통합되지 않은 자아가 감당할 수 없다. 이 때 초기 자아는 이러한 불안을 다루기 위해 분열, 투사, 내사와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초기 자아는 죽음본능을 분열시켜서 밖으로 투사한다. 동시에 생명본능도 이상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투사된다. 이렇게 해서 자아는 리비도적인 부분과 파괴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분열된 대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

박해불안(Persecutory Anxiety), 분열(Splitting)

따라서 유아가 처음 경험하는 세계는 두 개의 대조적인 세계로 분열되어 있다. 한편으로 유아는 만족스럽게 젖을 빨면서 사랑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낀다. ‘좋은 젖가슴’은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젖을 공급해주고 풍부한 사랑으로 자신을 보호해준다. 유아는 이 ‘좋은 젖가슴’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배고픈 아이는 자신의 증오를 투사하여 고약하고 ‘나쁜 젖가슴’을 형성한다. 배고픈 상황에서 젖가슴이 나타나지 않을 때 그것을 단순히 부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악의를 가지고 주지 않는 것으로 경험한다. 이것은 아이가 자신의 공격성을 젖가슴으로 투사했기 때문이다. 유아는 이 나쁜 젖가슴을 미워하고 그것을 다 먹어치우거나 물어뜯는 환상을 갖는다. 그 결과 자신이 공격한 나쁜 젖가슴으로부터 보복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박해 불안을 갖게 된다. 배고프고 화가 난 유아는 젖가슴을 주어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유아는 나쁜 것으로 변한 그 젖가슴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환상뿐만 아니라 유아 자신이 그 젖가슴에 의해 다시 공격을 받는 환상을 갖는다(이를테면, 깨무는 젖가슴).
이러한 생후 초기 경험에서 유아가 어떻게 정서적인 안정을 이루느냐는 얼마만큼 이 두 세계를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좋은 젖가슴이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으려면 그것은 나쁜 젖가슴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좋은 대상을 나쁜 대상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의 분열이 일어난다.
만일 이 단계에서 불안이 과다하면 박해불안에 대한 방어로서 좋은 대상은 이상화되고(이를테면,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젖가슴) 분열은 더욱 심해진다.
최초의 분열은 약한 자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좋음과 나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그러나 분열이 심하면 자아는 약해지고 응집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신병리가 발생한다.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의 중요한 방어기제로서 투사적 동일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투사가 자신의 감당하기 힘든 충동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함으로 축출하는 것이라면, 투사적 동일시에서는 충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일부가 대상 안으로 투사된다. 이때 투사된 것이 자기의 일부분이므로 무의식적인 동일시를 통해서 추방된 부분과의 연결이 유지된다. 투사된 정신내용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주체는 그 내용과 관계를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투사적 동일시는 자기의 나쁜 부분만이 아니라 좋게 느끼는 부분까지도 포함한다. 나쁜 부분들이 투사되면 그 대상은 두려운 박해자가 되고, 좋은 부분들이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의존이 생긴다. 이때 그 대상의 상실은 자신의 일부분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대상은 통제되어야만 한다. 동시에 그 대상은 자신의 가치 있는 모든 부분을 담고 있으므로 개인은 그 대상에게 전적으로 지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투사적 동일시는 초기에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기제이지만 그 자체로는 병리적인 것이며 이것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경우 정신병이나 심한 성격장애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생성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는 심각한 현실 지각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고 자아와 대상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정신병적 와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많은 이론가들은 클라인학파에서 투사적 동일시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론가들이 투사적 동일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클라인이 애초에 사용한 투사적 동일시 개념은 이런 것이었다. 유아는 자신의 공격성을 투사하여 무는 입이 달린 젖가슴이나 배설물들로 가득 찬 젖가슴에 대한 환상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젖가슴은 자신의 나쁜 부분과 전적으로 동일하게 여겨진다. 그러한 자신의 일부는 대상 속에 있으면서 대상을 통제하고 파괴한다. 이후 이론가들은 투사적 동일시를 대인관계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자신이 담아둘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마음 안으로 밀어 넣어 그것을 처리하거나 전달하려는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 병리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좋은 대상이 나쁜 대상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내재화되어 있느냐, 분열, 투사적 동일시와 같은 원시적 방어기제를 어느 정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신건강이 결정된다. 클라인은 외부대상과의 실제 경험보다는 주로 타고난 공격성을 강조한다. 외부대상과의 경험의 영향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주로 젖을 얼마나 풍성하게 먹었느냐, 젖이 끊어지지 않고 잘 나왔느냐, 원할 때에 젖을 먹었느냐 등의 생물학적인 욕구충족의 측면을 주로 강조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지나친 박해불안을 경험한다면 해소되지 못한 문제가 생기고 이는 정신병리의 원인이 된다. 정신분열증, 분열적 성격장애, 아동이나 성인의 신경증에서 드러나는 편집적, 분열적 특징들의 근저에는 초기 발달단계에서의 편집적 불안과 분열적 방어들이 놓여있다.
클라인은 투사적 동일시를 중심으로 분열성 기제(Schizoid mechanism)를 설명한다. 자신 안에서 비롯된 공격성을 통제하기 위해 투사적 동일시가 성격을 지배할 때 외부대상은 자기를 나타내는 표상이 된다. 대상은 이제 자기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대상은 자아를 침범해 들어오고 자아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자아의 통합성은 위협당한다. 부서지기 쉬운 자아 경계를 보호하기 위해 대상으로부터 철수가 일어난다. 즉 대상으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취하기 위해 성격의 정서적 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이렇게 해서 감정이 상실되고 피상적인 정서나 거짓 감정으로 대체된다.
박해 망상 같은 편집적 장애 역시 투사적 동일시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투사적 동일시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자기 자신은 빈곤하고 연약한데 반해 모든 힘이 외부 대상에게 있으며 자신은 외부 대상에 의해 통제된다는 망상적 사고가 형성될 수 있다. 건강 염려증은 환자의 박해불안이 신체 부위와 신체 기관 그리고 신체기능으로 투사된데서 비롯된다. 외부세계로부터 오염되거나 병적으로 통제당하는데 대한 두려움은 편집증적이고 건강염려증적 속성을 가진 박해불안의 표현일 수 있다.

우울적 자리(Depressive Position)

우울 불안(depressive anxiety)

클라인에 따르면 유아는 생후 4개월부터 6개월 사이에 통합적 인식 능력이 자라면서 좋은 외적 대상과 나쁜 외적 대상이 실제로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아는 전적으로 좋은 대상과 전적으로 나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이 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어머니는 유아의 만족감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좌절과 고통의 원천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자신의 고통과 좌절이 나쁜 대상의 악의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그 자체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독립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박해 불안은 줄어들고 분열의 필요성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새로운 불안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제 유아의 적대적인 환상 속에서 파괴되는 것은 나쁜 젖가슴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좋은 젖가슴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유아는 자신이 박해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라고 느낀다. 이제 박해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자아이며, 위험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이렇게 해서 죄책감과 우울 불안이 생성된다. 우울불안은 자아 자체보다 자아의 좋은 대상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 대상을 염려(concern)하는데서 나타난다.

보상, 양가감정, 감사

우울적 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제는 보상, 양가감정, 감사이다. 보상(reparation)은 상처를 치료하려는 노력을 통해 좋은 대상을 공격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고, 그 대상을 내적 및 외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해서 보상은 승화의 근원이 된다. 감사(gratitude)는 원래 생애 초기부터 시작된 좋은 대상에 대한 리비도 투자의 표현이다. 이 시점에서 감사는 공격성에 의해 해를 입거나 상처를 받을까봐 염려되는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다시 말해 죄책감은 감사를 강화시키고, 감사와 보상은 서로를 강화시키며, 이는 다시금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양가감정(ambivalence)은 특정한 방어기제라기보다 일반적인 정서적 성숙의 표현이다. 동일한 대상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는 유아의 의식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진시킨다. 양가감정을 포용하는 것은 전체 대상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미움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랑과 증오의 통합은 정서적 심화와 정서적 성숙,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공감적 지각능력의 심화 그리고 대상들 사이의 좀더 세밀한 분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편집-분열적 자리에서는 인지적 성숙, 어머니와의 좋은 경험 등과 같은 외적인 요인이 편집-분열적 방어가 해소되도록 촉진시키는 반면, 우울적 자리에서는 내적 요인, 우울적 자리의 기제가 바로 우울적 불안을 해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울적 자리는 편집-분열적 자리와는 달리 성숙을 이루는데 필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편집적 방어, 조적 방어

우울적 자리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좋은 대상을 충분히 내사하는 것과 외적인 대상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양질의 돌봄을 받는 것에 달려있다. 이러한 조건이 만족되면 유아는 자신의 공격성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죄책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내사된 좋은 대상이 약하고 불안정하거나 이 시기의 경험이 부정적일 때 유아의 성격은 해소되지 않은 죄책감과 무가치감에 의해 지배된다. 대상에 대한 염려와 죄책감으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이 극단적일 때는 다음의 두 가지 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편집적 방어는 우울적 자리에서 물러나 다시 편집적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책감이 극단적일 때 대상에 대한 염려로부터 자기에 대한 끝없는 반추로 옮아가며 이 때 노골적인 편집적 상태가 뒤따를 수 있다. 대상에 대한 죄책감은 가혹한 처벌자에게 시달리는 자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형된다.
조적 방어(manic defence)에서는 전능감 속에서 심리적 현실들이 모두 부인된다. 대상에 대한 의존성은 부인되고 대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그 운명은 무시될 수 있다. 주체는 그 위에 군림하며 승리감을 느끼고 대상을 조종한다. 이러한 방어기제들은 정상적인 발달의 한 부분이지만, 만약 과다하고 오래 지속된다면 우울적 자리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저해하게 된다. 클라인에 따르면 우울 불안에 대해 정상적인 아동이 일시적으로 보이는 조적 방어와 성인의 조울 장애에서 나타나는 조증(mania)은 동일하다.

정신병리

해소되지 않은 우울 불안으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병리는 우울증일 것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불안을 극복할 수 없어서 공격성을 모두 억압한다.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끊임없는 자학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자기 증오의 산물이다. 우울증 환자는 상처 입은 대상을 복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공격성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자학은 죄책감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좋은 대상을 보호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이다. 우울증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초기 대상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관계는 지속되지 못하고 단절된다. 우울증 환자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만일 그러한 만족을 얻게 되면 우울증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증을 발전시킨다.
우울적 자리에 대한 클라인의 이론은 왜 어떤 사람은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가질 수 없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애도작업은 사랑하는 사람이 외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재발견하는 현실검증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는 이 과정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클라인은 애도 작업이 이러한 현실검증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우울적 자리의 극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는 것은 애도하는 사람 안에 있는 우울적 자리의 갈등을 일깨운다. 그를 지원해주던 좋은 외부 대상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자신을 남겨두고 간 대상을 향한 미움이 커지기 때문에 애도하는 사람은 실제의 외적 대상을 잃은 데 대한 고통뿐만 아니라 우울적 자리에서 유아가 느꼈던 것처럼, 좋은 내적 대상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이 애도작업은 내적 대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편집적 감정들로 퇴행하는 것과 상실에 대한 조적 방어들을 극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만일 사별한 사람이 자신의 발달과정에서 우울적 자리의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는 애도작업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클라인은 또한 강박 신경증, 편집증의 일부 형태, 신경증적 성격 장애, 그리고 오늘날 경계선적 장애나 자기애적 장애라고 명명된 사례에서 나타나는 많은 증상들은 일차적으로 우울적 자리의 불안과 죄책감을 도피하려는 시도라고 개념화하였다. 우울적 자리의 역동이 수많은 유형과 수준의 병리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클라인은 자신의 정신병리 이론에서 우울적 자리에게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것을 종종 (프로이트가 말한) 유아 신경증과 동등하게 아동기의 근본적인 갈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클라인에 따르면 이러한 근본적인 갈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극복하느냐는 정서적 발달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시기심과 감사

클라인에 따르면 시기심(envy)은 탐욕(greed)이나 질투(jealous)와 구별되는 감정이다. 탐욕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풍요로움을 소유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탐욕으로 인한 손상은 의도적인 파괴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시기심의 직접적인 목적은 대상이 가진 속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질투 또한 시기심과 구분되어야 한다. 질투는 오이디푸스적 삼자관계에 속한 좀 더 섬세한 감정으로서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기심은 욕망하는 대상을 사랑함으로 경쟁자를 증오하는 것이다. 시기심은 질투보다 더 원초적인 감정이다. 이는 부분 대상관계에서 형성되며, 삼자관계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클라인에 따르면 시기심은 편집-분열적 자리의 기본적인 감정으로서 원초적인 형태로 젖가슴을 향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유아는 어머니가 제공하는 음식, 사랑, 안락함이 외부에 있으며 자신은 이것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라는 자각은 유아로 하여금 시기심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깥에 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시기심은 나쁜 젖가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좋은 젖가슴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시기심은 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파편화함으로써 나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혼동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많은 정신병적 혼동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내적 대상의 내사과정이 방해됨으로써 자아는 더욱 허약해진다. 허약해진 자아는 다시 더 강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일어나며, 이러한 악순환 가운데 내면은 심하게 황폐해진다.
시기심에 대한 방어는 대상을 평가절하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방어는 대상을 망쳐버리고자 하는 충동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대상을 이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화는 대상이 지닌 좋은 속성을 더욱 강조하기 때문에 시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시기심을 가진 아동은 그것을 분열시켜서 순종적이 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시기심에 대한 클라인의 이론은 소위 ‘부정적인 치료반응’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준다. 왜 어떤 환자들은 분석을 통해 어떤 긍정적인 효과도 얻지 못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부정적인 치료반응이 무의식적인 죄책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클라인에 따르면 부정적인 치료반응은 ‘좋음’ 자체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분석가가 지닌 잠재적인 선함, 효율성, 혹은 사랑을 시기한다. 환자가 분석가에게 저항하는 것은 분석가가 지닌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모든 해석은 쓸모없거나 환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환자는 시기심을 사용하여 모든 희망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클라인은 분석가가 시기심의 작용을 해석함으로써 분석상황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시기심의 파괴적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치료기법

클라인은 전통적인 정신분석 장면을 엄격하게 고수하면서 환자의 자료를 오로지 해석을 통해서만 다루었다. 해석은 자아 심리학에서처럼 자료의 표층에서 심층으로, 방어에 대한 분석에서 내용에 대한 분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환자의 가장 깊은 무의식적 불안 수준에서 심리내적 갈등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것은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편집-분열적 자리 및 우울적 자리와 관련된 원시적 환상과 방어를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환자가 겪는 모든 불안 상황이 박해불안과 우울불안을 다시 활성화시켜서 원시적 방어, 환상내용, 공포 등이 전이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클라인 이론은 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신경증, 성격장애, 주요 정신병 등의 임상적 증상을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클라인은 모든 사례에서 가장 깊은 무의식적 불안은 “정신병적 불안”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정신분열증, 편집증, 조울증의 특징을 이루는 무의식적 갈등, 방어, 불안이 모든 사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클라인은 정신분석을 성공적으로 종결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두 자리를 충분히 극복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보통 편집-분열적 특성을 먼저 해석하고 그 다음에 우울적 자리의 특성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너무 빨리 우울불안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근저의 편집-분열적 방어나 불안을 더 심하게 억압하기 때문이다. 우울적 자리에서 나타나는 우울불안은 보통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으며, 우울적 자리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자아의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먼저 편집적 방어를 극복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판

클라인의 이론은 정신분석 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영국 정신분석학회는 클라인 학파와 반 클라인 학파로 갈라지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론 체계에 대한 공격은 다음의 몇 가지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클라인이 가정하는 복잡한 정신과정은 유아에게 일어날 수 없다. 세살짜리 어린이 분석자료에서는 그러한 환상 내용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한살 이전의 유아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유아 연구 결과에 의해 잘 지지되고 있다(Lichtenberg, 1983; Stern, 1985). 생후 몇 개월된 유아가 원색장면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페니스가 어머니 속에 있다는 환상을 갖는 것은 유아의 인지 능력으로 볼 때 불가능하며, 유아가 성교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둘째, 정신병리적 구조들을 정상적인 발달 과정과 혼동하였다. 클라인은 편집증, 우울증, 조증, 강박증의 병리적 반응을 정상적인 유아에게 속한 것으로 주장하였지만, 이를 지지하는 근거로서 병리적인 아동 분석자료 밖에는 제시하지 못했다. 최근 유아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인 유아에서 이러한 병리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Stern, 1985).
셋째, 공격적 욕동의 개념이 모호하다. 클라인은 유아의 고통을 공격성으로 해석하면서 공격성을 증오, 파괴하려는 욕망, 가학증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고통은 공격성을 함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반응이 증오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유쾌하거나 건강한 자기주장은 공격적이지만 증오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학적인 소망은 공격성에 대한 병리적인 왜곡일 수 있지만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게다가 공격성이 욕동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공격적인 반응은 성욕, 식욕과 같이 만족을 추구하려는 생물학적 압력에 의해 동기화되지 않는다.
넷째, 용어 사용의 문제이다. 투사적 동일시, 분열과 같이 중요한 개념들은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르게 사용되었다. 특히 분열과 억압은 동일한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아라는 개념 역시 자기와 구분이 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다섯째 비판은 클라인의 ‘wild'한 분석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아동의 놀이에서 나타난 자료를 확증해주는 연상적 자료를 기다리지 않고 원색 장면이나 다른 원초적인 환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 있었다. 성인 분석의 경우에도 확증해주는 연상적 자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자료로부터 전이, 원색 장면, 편집 불안과 우울 불안 등으로 연역 추론하였다. 자아 심리학자들은 원본능을 해석하기 이전에 먼저 방어를 분석하지 않은 점, 표면적인 해석에서 깊은 해석으로 내려가지 않고 초기부터 심층적인 해석을 함으로 분석과정이 결여되어 있는 점 등을 비판한다.

클라인 이론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임상가들은 박해불안과 우울불안의 구분 및 이에 대한 정치한 묘사, 분열, 투사적 동일시, 조적 방어와 같은 원시적인 방어기제의 개념이 다양한 정신병리, 특히 경계선적 장애나 자기애적 장애와 같은 심각한 성격 장애나 정신병적 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매우 가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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